대저 두 그루 계수나무(달마가 있던 소림굴의 나무)가 그늘을 드리움(선풍이 날린 것)에 한송이 꽃이 상서(길조 서)를 드러내니,
이로부터 총림의 설립의 근본(요)은 본디 대중스님들을 위함이니라.
■ 소임설명
그러므로 대중스님께 (법을) 열어 보이기 위한 까닭에 장로가 있고,
대중스님에게 거동(본, 의)을 밝히기 위한 까닭에 수좌가 있으며,
대중(살림)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까닭에 감원이 있고,
대중을 조율하고 화합하는 까닭에 유나(입승)가 있으며,
대중을 공양하는 까닭에 전좌(별좌)가 있고,
대중을 위해직책을 행하는 까닭에 직세(1년 계획을 세우고 관리함)가 있고,
대중의 출납을 담당하기에 고두가 있고,
대중을 위해 문서(문서 붓 한, 먹 묵) 를 주로 맡는(전) 까닭에 서장(서기)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해 바른 가르침을 수호하는 까닭에 장주(지전)가 있고,
대중을 위해 단월을 맞아(영) 대하는(대) 까닭에 지객이 있으며,
대중스님을 위해 심부름(청소)하는 까닭에 시자가 있고,
대중을 위해 가사와 바루를 간수하는 까닭에 요주(부전)이 있으며,
대중스님께 탕약을 공양하여 모시는 까닭에 당주가 있고,
대중스님들이 씻고 빨래(탁)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까닭에 욕주수두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의 추위를 막기(어)위한 까닭에 탄(숯) 노(화로)두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해 탁발(빌 걸, 빌 개)하기위한 까닭에 가(거리, 길)방(동네) 화주가 있으며,
대중을 위해 노동을 담당하는(집) 까닭에 원두(밭)마두(방아갓)가 있고
대중스님을 위해 청소하고(척) 깨끗이(제)하는 까닭에 정두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넉넉하게 모시기 위해 정인(속인)이 있느니라.
그런 까닭에 불도를 수행하는 인연이 한껏(십분) 갖추어져 있고,
몸을 돕는(자) 도구들은 온갖것(백색) 다 이제 갖추어졌으니(현전성취의 준말)
만사에 근심이 없음이라 일심으로 도를 행하니,
세간에서는 존귀하고, 출세간(물외=방외)에서는 넉넉하고 한가함이라.
청정무위는 대중스님이 으뜸이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돌이켜 생각건대
어찌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지 않으리요?
■ 대중의 의무
새벽(신)에는 [상당법회에] 참례하고 저녁(모)에는 (질문을) 청하여 촌음도 버리지 않으면 장로에게 보답하는 것이오,(所以, 원인과 결과, 그래서 그러니까 그러한 까닭은) 높고 낮음에 차례가 있고 들고 멈춤에 차분하고 조심스러워야 수좌에게 보답함이요,
밖으로 법령을 따르고(지킬 준) 안으로 청규(규구준승規矩準繩,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를 지키면 감원에게 보답하는 것이요,
육화(함께수행 戒和, 함께거주 身和, 다툼없엄 口和, 함께기쁨 意和, 함께이해 見和, 함께이익 利和)로 함께 모이되 물과 기름으로 서로 섞이면 유나에게 보답함이요,
도를 이루기 위한 까닭으로 비로소 이 음식을 받으면 전좌에게 보답함이요,
승방에 편안하게 머물러 집물을 지키고 아껴야 직세에게 보답함이요,
상주물(대중이 함께 쓰는 물품)을 한 터럭도 범하지 않아야 고두에게 보답함이요,
손에 붓도 잡지 말고 머리에 불끄듯 하여야 서장에게 보답함이요,
밝은 창(창 창) 깨끗한 책상(안)에 옛 가르침으로 마음을 비추어야 장주에게 보답함이요,
빛(재능)을 숨기고(감출 도) 자취(흔적 적, 덕성을 비유)를 감추고(회) [이런저런데] 따라서(더할 배, 합세해서 끼는거) 좆아 다님을 일삼지 않아야 지객에게 보답함이요,
머무름에 반드시 일정함(상)이 있고 부름에(처) 반드시 먼저 도착해야 시자에게 보답함이요,
정병(손씻는 물 담는 병)과 발우 한 벌로 산처럼 대중에 머물러야 요주에게 보답함이요,
병고에도 마음을 편안히 하여 죽과 약에 맡김이 알맞아야 당주에게 보답함이요,
가볍고 천천하게 고요하여(정묵) 물쓰는 인연에 어둡지않아야 욕주수두에게 보답함이요,
말을 봉하고(함) 손을 맞잡아(공수, 합장하고 차수하고) 자신은 물리고(겸양하다 퇴) 다른 이에게 사양하여야 탄두노두에게 보답함이요,
자신의 덕행이 온전히 모자란지 공양 받아 마땅한지 헤아려야 가방화주에게 보답함이요,
수고로움이 많고 적음을 헤아리고(촌) 그것이 온곳을 헤아려야(량) 원두마두장주에게 보답함이요,
물을 따르고(작) 밑씻개(투호살, 산가지 주)를 씀에(쓰다 운용하다 운) 부끄러움을 알고 부끄러움을 인식해야 정두에게 보답함이요,
관대하여 쉽게 따르고 간결하여 쉽게 일할수 있어야 정인에게 보답함이니라.
그러므로 총림이에서는(下 ~에) 도업이 여전히 새로워져서 상상근기는 한생에 취하여 갖추고,
중간 무리의 사람(계층 사)들은 성인의 태를 길이 길러서 마음의 근원을 아직 깨닫지는 못한다 하더라도(가설 如) 때를 맞춤에(시중, 적절히) 또한 헛되이 버리지는 않을 것이니,
이는 진실된 승보이며 세간의 복밭이 됨이라.
가까이는 말법의 [피안으로 가는]나루터와 징검다리(들보 량)가 되고, 마침내 두 가지 장엄(지혜와 복덕)의 지극한 과위를 증득하리라.
■ 소임자의 도리
만약(若或, 첫머리에서 만일 ~하면) 총림이 다스려짐이 없고 법륜이 구르지 않으면, 장로가 대중을 위하는 도리가 아니요,
(장로된 바 대중을 기쁘게 할수 없고, 장로로써 대중을 기쁘게 할 수 없고, 장로로써 대중을 기쁘게 할 수 없고)신구의 삼업이 고르지 않고,
행주좌와 사위의의행동거지가 엄숙하지 않으면 수좌가 대중을 통솔하는 도리가 아니요,
대중을 받아들이는(담을 용) 아량이 관대하지 않고 대중을 사랑하는 마음이 두텁지 않으면 감원이 대중을 수호하는 도리가 아니요,
수행자를 편안하게 하지않고 무리(군)를 깨뜨리는 자를 없애지 않으면 유나가 대중을 기쁘게 하는 도리가 아니요,
여섯 가지 맛이 정미롭지 않고 삼덕(음식의 청정, 유연, 여법)이 넉넉하지 않으면 전좌가 대중을 받드는 도리가 아니요,
요사를 닦지 않고 집물을 갖추지 않으면 직세가 대중을 편안하게 하는 도리가 아니요,
상주물을 축적하면서 대중스님을 줄이고(감)덜면(이길 깎을 삭제할 극) 고두가 대중을 넉넉히함(섬)이 아니요,
글씨 모양(장)이 숙련되지 않고 문자가 엉망이면(멸렬, 찢기고 흩어져 형체를 알수 없음) 서장이 대중을 마무르는(꾸밀 장) 도리가 아니요,
책상머리(궤안, 책상 궤, 사방의자, 책상 등)가 엄숙하지 않고 시끄러운 번뇌를 쉬지 않으면 장주가 대중을 모시는 도리가 아니요,
곤궁함을 미워하고 풍성함을 사랑하여 세속을 중히 하고 대중을 가벼이 하면 지객이 대중을 돕는(찬) 도리가 아니요,
예를 갖춘 모습이 공손치 않고 높고낮 음의 차례를 잃으면 시자가 대중의 명을 받는 도리가 아니요,
가지런히 정돈함에(打동작을 나타내는 접두사, 포갤 첩) 부지런하지 않고, 지키고 보호함에 조심하지 않으면(삼갈 근) 요주가 대중을 머무르게 하는 도리가 아니요,
받아들임에(한) 공손히 모시지 않고 아픈 사람을 괴롭고 어지럽게 하면 당주가 대중을 어루만지(구휼 휼)는 도리가 아니요,
끓인 물이 충분하지 않아 차갑고 따뜻함이 마땅함(거동, 마땅할 의)을 잃으면, 욕주수두가 대중을 씻게하는 도리가 아니요,
미리 준비를 앞서 하지않아 대중의 생각을 움직이게 하면 노두탄두가 대중을 향하는(마음을 기울이는) 도리가 아니요,
재물 대함이 공변되지 않고 선력을 다하지 않으면 가방화주가 대중에게 공양하는 도리가 아니요,
땅으로 남을 이익이 있는데 사람손으로 온전히 공들이지 않으면 원두마두장주가 대중을 대하는 도리가 아니요,
게으르고(게으를 나) 소홀히 하여(게으를 타) 한꺼번에(아우를 병) 없애서 제반인연(정랑에서 필요한 물품들)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정두가 대중을 섬기는 도리가 아니요,
금하는 것을 그치지 않고 명하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정인이 대중을 따르는 도리가 아니니라.
만약(여) 승려대중이 스승을 가벼이 여기거나 법을 업신여기고 성품대로 인연을 취하면, 장로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앉고 누움에 가지런함이(참여하다 가지런하다 참) 차별되며(차별 치, 어긋날 차, 참치) 물러가고 나아감에 괴각스러우면(거역함 괴, 다툼 각) 수좌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의중에 법왕의 가르침을 가벼이 하고 총림을 돌아보지 않으면 감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요,
위아래가 화합하지 않고 다툼이 견고해지면 유나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좋은 반찬(선)을 탐하고(탐람, 탐하다 람) 거친 음식물(찬) 투덜거리면(헐뜯을 훼, 헐뜯을 자) 전좌에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요,
거처와 받아씀에 뒷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면 직세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이양을 너무(다) 탐하고 상주물에 아껴쓰지(돌보다 휼) 않으면 고두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붓(필)과 벼루(연) 가지고 일삼아 문장에만 내달리면(달릴 치, 달릴 빙) 서장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금문을 만만히 보아 쉽게 여기고 외전만 찾아보면 장주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세속무리들을 따라서 귀인과 서로(교) 사귀면, 지객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부르고 청하는 것을 잊어버리고(잊을 유, 잊을 망) 대중들과 오래 앉으면 시자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자기 때문에 남에게 방해가 되고 보관을 게을리(만)하고 훔쳐가게 가르치면 요주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화를 많이 내고 기쁨은 적어서 질병의 바른 인연들을 따르지 않으면, 당주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물통(통)과 바가지(자루 표) 소리를 내고 물을 씀에 검소(알맞을 절, 검소하다)함이 없으면 욕주수두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자신에게 따뜻함(온난)을 이롭게 하여 다른 대중에게 방해됨이 있으면 노두탄두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념하는 수행을 안하고 편안하게 공양을 받으면 가방화주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종일토록 배불리 먹고 마음 쓰는 곳이 없으면 원두마두장주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담장이나 벽에 코를풀고(체) 침을뱉고(타) 정랑(동쪽에 있는 변소, 동사) 어리저이(랑) 흐트러놓으면(자) 정두에게 보답함이 아니요,
오로지 위엄만 내세우고, 앞서는 좋은 가르침이 없으면 정인에게 보답함이 아니니라.
대개 회오리바람(돌 선, 바람풍)이 천년을 휘몰아쳐도 여전히(오히려 상) 미치지 못함이 있으리니[아무리 잘해도 부족함이 있을수 있다], 다만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좆아 출가자의 일에 함께(공) 힘써야(판) 함을 알지어다. 바라는 바는 사자굴에서는 모두 사자가 되고, 전단숲 아래서는(단향목 전) 오로지(온전할 순, 순수할) 전단나무이니, 모두(사)로 하여금 후오백년에 영취산의 법회를 다시(재) 보게 하리라. 그러면 법문의 흥폐가 승려무리에 달려있으니, 스님들이 바로 공경의 밭이니 응당 받들어 중히여길지니, 스님이 귀하면 법이 중하고 스님이 가벼우면 법이 가벼워지느니라.
안으로 보호하여서 엄숙해져야 밖에서 옹호함에 반드시 삼가야 하리니, 설사 죽밥의 주인이라도 한때 왕의 덕화로 총림이 담당하는 일들을 뜻하지 않게(우연히, 偶爾=偶然) 권한을 맡았거든(당할 당) 항상 [같은 두루마기 입는] 동포들을 공경하고 믿어야(앙)하고(마땅 의), 망령되이 스스로를 존대하지 말라. 만야 높이받들고 스스로 잘난체하여 사사로운 일을 공적으로 갚으면(갚을 수) 만사가 무상하니 어찌 길이 보전할 수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대중으로 돌아오면(소임이 끝나면) 무슨 낯으로 서로 보겠는가? 인과는 어긋남이 없으니 회피할 수 없음을 두려워하라.
스님은 부처님의 아들이라 응공과 다름없으니, 천상인간에게 모두 공경 받느니라.
두 때의 죽과 밥을 도리에 맞고(이) 합당하고(합) 정갈하고(정) 풍족하게 하며,
네 가지 공양 받아야 할 것을(의복 음식, 와구, 탕약/방사, 4의법) 모자라거나 적게 하지 말지니라.
부처님께서 20년을 남기신 음덕[100세에 입적하지 않으시고 20년 미리 입적하셔서 복덕을 후손에게 남겨주심]이 무릇 자손들을(승가무리들을) 덮어주는지라 백호광명으로 일분공덕도 받아쓴다고 없어질 수 없으리니, 대중을 받들 줄 알면 될 것이지 곤궁을 근심하는 것은 옳지(가) 않느니라.
스님은 범부와 성인이 없기에 시방을 모아도 통하나니, 이미 초제(catur-disa의 음역, 사방승방, 스님들의 객실)라 부른다면 모두 다 몫이 있으니, 어찌 망령되이 분별을 일으켜 객승을 가벼이 여기고 싫어할 수 있겠는가? 단과료[선림에서 저녁에 와서 묵고 아침에 떠나는 행각승들의 처소 통칭] 객실에 세 번 아침은 머물 권리가 있으니, 예를 다하여 받들어 모셔야 하며, 승당 앞에서 잠깐이라도 불공을 구하거든 평등한 마음으로 공양해야 하리니, 세속 손님까지도(상유, ~까지도) 돌보아 관리하는데, 승가를 만나영접하지 않고 모질게 할 수 있겠는가?(忍 모질게 하다)
만약 선을 긋는(유한, 한계를 정하다 경계를 정하다) 마음이 없다면, 자연히 무궁한 복이 있으리라. 승가문중은 화합문중이라, 상하가 같은 마음이니 서로 장단점이 있더라도 서로서로 덮어주고 절집의 추하고 나쁜 것을 밖에서 들을 수 없도록 할 지어다.
비록 일에는 해가 없더라도 필경에 다른 사람들의 우러러봄이 줄어들 것이니,
마치 “사자몸속의 벌레들이 사자의 고깃살을 스스로 먹는것”과 같은지라.
외도천마가 무너뜨릴 수 있는 바는 아니니라. 만약 수행의 가풍을 떨어 뜨리(추)지 않고,
부처님태양이 항상 밝혀 조사경계(역)의 영예(광휘)를 훌륭하게 하며(장, 씩씩하다 성하다 기상이 훌륭하다) 황조의 성스러운 덕화를 돕고자 한다면, 원컨대 이 글로 귀감을 삼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