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엄 입법계품 우리말 전문 0 By 아라마 on 2023년 12월 31일 40화엄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읽다.-나무를 심는 사람들요즘들어 책상에 앉고 나서 먼저 손에 잡는 책이 있다.화엄경의 입법계품이다.벌써 여러 날 째다. 통도사의 목판본으로 책장을 넘기다시피 배운 기억이 있지만 여전히 화엄경은 나에게 낯선 책이었다.내가 그 책을 정말 배웠던가? 무슨 내용이 어떻게 씌어져 있었지?그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엉뚱하게도 청량 국사 징관의 화엄경 소초가 떠오를 뿐이다. 그것도 화엄경 현담의 의리분제장에 남아 있던 이치에 의거해 현상이 이루어진다는 依理成事門 따위의 뼈대 앙상한 교리적인 내용이 전부다.화엄경이 정말 그럴까? 입법계품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잖아? 요즘의 내가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사실 나는 그동안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손에 잡았다가 그만 둔 기억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야무진 인내심을 발휘해서 가끔 손에 책을 들었다가도 그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책이 반드시 어려운 탓만도 아니었다. 시중에서 잘 팔리는 다른 책들과 달리 쉽게 이야기의 줄거리에 집중이 되지 않는 탓이었다. 만약 그게 아기자기한 우리 일상의 성공담이나 어느 사랑하는 남녀가 긴박하게 펼쳐보이는 줄거리의 연애담이라고 하여도 그랬을까? 분명 아니엇을 것이다. 나는 자기 자신의 태도에 순간적으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나의 수준이 이 정도였다니. 그러므로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일종의 궁색한 자기 실망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애초의 소박한 동기와 달리 이번에는 책의 느낌이 전혀 색다르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문수를 만나면서 덕운비구를 만나면서 해탈장자와 자행동녀를 따라 길을 더듬어가면서 나는 이야기의 주인공 선재동자 못지 않게 그 책의 깊이 있는 정신세계와 새로운 내용의 가르침 앞에서 눈 앞이 확트이는 체험을 경험하고 있었다.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는 아마 현실 세계의 교묘한 이법의 자각일 것이다.입법계품에 의한다면 우리가 만나는 우리 주변의 모든 인물과 모든 대상들이 우리의 선지식 아님이 없다. 우리가 천하다고 여기는 우리 주변의 그 어떤 대상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우리가 그토록 경건하게 찾아헤매는 우리 인생의 거룩한 스승과 같은 존재이며 우리의 아픔과 우리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선지식들이다.그래서 선재의 행각은 문수에서 시작하여 문수에서 끝을 맺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마음의 눈을 뜨게 된다는 상징으로 이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인생은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따라서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을 자각시키고자 하기 때문일까? 아무튼 선재의 구법 행각은 福城의 동쪽 당사라림 속에 있던 문수보살의 처소로 가서 발심하고 그 가르침을 따라 남쪽으로 여행하며 53 선지식을 찾아보고 마침내 마음의 온갖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움을 획득하게 되는 구도행각을 마무리짓는다.그러나 그가 만나는 53명의 선지식이란 다름 아니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라고 쉽게 생각하면 무리가 없다.때로는 출가수행자를 만나고 때로는 재가거사를 만나며 때로는 뱃사공을 때로는 창녀와 상인을 만나고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외도와도 만난다. 또 그 대상들 중에는 신분의 높고 낮음도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왕의 신분이고 어떤 이들은 하천한 계층의 이들이다. 또 그들은 선재가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마음의 병고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때로는 눈이 밝아야 하는 장자를 만나게 되기도 하고 노래에 장기를 지닌 장인을 만나기도 하며 천녀가 보면 천녀로 보이고 여인이 보면 여인으로 보이며 귀신이 보면 귀신으로 보이는 사자분신비구니 등도 만난다. 또 탐욕이 많은 사람에게는 탐욕을 다스리게 하고 성내는 기질이 심한 사람에게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다스리도록 도우며 어리석은 마음이 심한 사람에게는 법상관으로 그 어리석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 끝없는 여행을 펼쳐보인다.그러나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느 도가 높고 덕이 있는 서가모니와 같은 교주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어느 한 사람만의 역할이 결코 아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상대했던 우리 주위의 청소부이고 구멍가게 안의 장사군이며 나에게 분심과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던 직장안의 어떤 대상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선재가 만나는 53명의 선지식들을 낱낱이 돌아보고 나면 그 느낌이 실제로 이와 같아진다.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할 수 있도록 우리의 바른 눈을 뜨게 하는 대상이 반드시 우리의 지금 이곳의 현실적인 공간을 떠나서 있지 않음을 이곳 화엄경의 입법계품은 새삼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다만 그들 낱낱의 선지식들은 단지 자기 분야에 있어서 남다른 경지의 지혜로움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 어느 특정인이 모든 경우에 모든 이들의 스승으로 추앙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고 서로가 서로의 모자람과 아픔을 보듬어주고 채워주는 보살의 모습으로 입법계품의 장엄한 구도행각은 진행되어 나가는 것이다.그래서 그들 선지식은 자기를 찾아온 입법계품의 주인공 선재동자를 향해 자기 아닌 또 다른 선지식을 소개해 인도하면서 이렇게 되풀이해서 말하곤한다.“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법문을 알고 있을 뿐이니—”음악에 빼어난 자는 음악을 통해서,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손재주를 통해서 힘이 센 자는 그 힘에 의존하여 궁극적인 마음의 평화를 바라는 우리의 주인공 선재를 이끌어간다.어디서 만나는 어떤 선지식도 똑 같은 모델의 반복되는 가르침은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가지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세상에 대한 끝없는 자비심이 모든 보살의 근본 마음의 철학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아파하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겠다는 자비심, 병들어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자비심,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는 이들의 그 두려움을 대신해 주겠다는 자비심, 바로 여기에 선재가 만나는 모든 보살과 선지식으로서의 진정한 보살다움과 선지식다운 삶의 깊은 감동이 있었다.이와 같은 단순한 논리의 입법계품을 나는 왜 그토록 생소하게 느끼면서 가깝게 느끼지 못했을까? 이는 아마 내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그동안의 나 자신만을 항상 먼저 추스르고 싶어하던 어두운 마음의 이기심때문은 아니었을까. 반드시 그랬을 것이라 여겨진다.참고로 화엄경의 입법계품은 삶의 본질적인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과정을 하나의 설화적 형식으로 전개해 보여준다. 물론 주인공은 선재동자다. 또 이 입법계품은 시인 고은에 의해서 그 내용이 다시 현대적인 감각으로 쉽게 윤색되어 한권의 책으로 출간된 적도 있다. 제목이 소설 화엄경이다. 반드시 관심의 초점이 화엄경 원문의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면 시인 고은의 소설 화엄경이 오히려 입법계품의 근본 취지를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0 Print 🖨 입법계품 40화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