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 붉은 바위보석 골짜기의 이야기

0

제1부 시험받는 밀라레빠

 

1. 붉은 바위 보석 골짜기의 이야기

위대한 명상 수행자 미라래빠가 보석 골짜기에 있는 ‘독수리 성’에서 마하무드라의 수행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시장기를 느끼자 음식을 준비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굴 안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소금도 물도 연료도 없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게을렀어. 밖에 나가서 땔감이라도 구해와야겠구나’
그는 동굴에서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나뭇가지를 주워 모았다. 순간 느닷없이 폭풍이 몰아치더니 나뭇가지를 날려버리고 그의 넝마옷을 찢어버렸다. 옷자락을 움켜잡으면 나뭇가지들이 날아가고, 나뭇가지를 끌어안으면 옷이 찢어졌다.

미라래빠는 생각했다.
‘그렇게도 오랜 세월을 진리를 수행한답시고 살아왔건만 나는 여전히 자아를 향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자아에 대한 집착을 이기지 못한다면 진리를 수행하는 일이 무슨 쓸모가 있으랴?
바람아, 불어라. 네 좋을대로 나뭇가지 날려보내라. 바람아, 불어라. 내 옷을 날려보내라!’
이리하여 미라래빠는 저항의 몸짓을 그만두었다.
이때 또 한 차례 강풍이 몰아쳤다. 허기에 지친 미라래빠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높은 나뭇가지 위에는 그의 넝마 조각이 산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세상사의 덧없음이 미라래빠를 덮쳤고, 그런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싶은 강렬한 느낌이 끓어올랐다. 미라래빠는 바위 위에 앉아 명상하기 시작했다.

멀리 동쪽 하늘가에는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아래 밀밭골에는 스승 마르빠와 마나님이 계신다. 지금 그분들은 제자들을 입문시켜 가르침을 베풀고 계시리라.
아, 나의 스승은 저기에 계신다. 지금이라도 그리 가서 스승님을 한번만 뵐 수 있다면……!’
스승에 대한 한없는 열망으로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에 미라래빠는 ‘스승을 그리워 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임을 생각하면, 아버지 마르빠시여,
내 마음의 고통은 한결 덜어집니다.
나, 걸식 행자는 임을 향한 노래부릅니다.

흰구름 두둥실 피어오르는
동쪽 붉은 바위 보석 골짜기에는
우뚝 버티고 선 코끼리처럼
거대한 산 하나 솟아 있고
그 곁으로 작은 봉우리,
사자가 달려 나오 듯 모습을 드러내네.
밀밭 골짜기 수도원에
큰 돌방석 있었네.

지금쯤 누가 거기에 좌정(坐定)하고 계실까?
행여 마르빠 역경사(譯經師) 아니신지?
임이시면 기쁘고 행복하련만.
공경심 부족해도 임을 뵙고 싶어라.
신심이 부족해도 임과 함께 머물고 싶어라.

명상하면 할수록 스승 더욱 그리워져.
마나님 다메마는 여전히 함께 계신지?
친어머니보다 고마우신 분.
마나님 거기 계시면 난 기쁘고 행복하리.
여행길 멀어도 마나님 뵙고 싶어라.
가는 길 험해도 곁에 머물고 싶어라.
생각할수록 임이 더욱 그리워지네.
명상하면 할수록 그리움 사무치네.
모임에 참례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임은 그곳에서 헤바즈라 딴뜨라를 설하시리.
소박한 마음으로 배우고 싶어라.
우둔할지라도 암송하고 싶어라.
생각할수록 임이 더욱 그리워지네.
명상하면 할 수록 그리움 사무치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르침의

네가지 입문식을 임은 베푸시리.
모임에 참례할 수 있다면 기쁘고 행복하련만.
비록 공덕을 쌓지 못했지만 가르침을 받고 싶어라.
생각할수록 예물을 드리지 못해도 가르침을 받고 싶어라.
생각할수록 임이 더욱 그리워지네.
명상하면 할수록 그리움 사무치네.

임은 나로빠의 육법(六法, 까귀빠의 중요한 수행법 여섯가지) 가르치시리.
거기에 참례할 수 있다면 기쁘고 행복하련만.
부지런하지 못해도 배우고 싶어라.
끈기 부족하나 수행하고 싶어라.
생각할수록 임이 더욱 그리워지네.
명상하면 할수록 그리움 사무치네.

위(weu)와 짱 형제들은 거기 있으리.
그리하면 기쁘고 행복하련만.
체험과 깨달음이 부족해도 견주어 보고 싶네.
내 깊은 신심과 공경심은 임을 떠나지 않앗나니,
임을 뵙고 싶어 내 가슴 찢어지네.
열렬한 갈망으로 번민하고
감당할 길 없는 고통으로 질식할 것 같아라.
자애로운 스승이시여,
이 고통에서 날 구해주소서!

*入門式, 꽃병입문 비밀입문 지혜입문 마하무드라 입문

미라래빠가 노래를 마치자마자 스승 마르빠가 오색 무지개빛 그름속에 나타나셨다. 화려하게 장식한 사자를 타고 다가온 스승의 얼굴은 천상의 광명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아들아, 왜 그렇게 간절히 나를 찾느냐? 왜 그렇게도 괴로와 하느냐? 그대는 스승과 불타에 대한 불변의 신심을 갖고 있지 않느냐? 바깥 세상의 유혹이 네 생각을 어지럽히더냐?

  여덟 가지 세상 바람(고통, 쾌락, 칭찬, 질책, 가난, 부귀, 명예, 치욕)이 네 동굴에도 몰아 닥치더냐? 두려움과 갈망이 그대를 괴롭히더냐? 그대는 삼보(三寶)와 스승에게 끊임없이 예배드리지 않았더냐? 육도 중생(천상 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에게 그대의 공덕을 회향하지 않았더냐? 죄업을 정화시켜 공덕을 성취하는데 이르지 않았더냐?

  우리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니 진리를 위하여,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그대는 명상을 계속하여라.”

이에 미라래빠는 기뻐하며 응답의 노래를 불렀다.

스승을 뵙고 음성 들으니
걸식 행자 미라의 심장 속에 에너지 넘치네.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하니
가슴속에 존경심과 공경심 솟구쳐 일어나네.
스승의 자비와 축복, 내 안에 들어오니
모든 번뇌 망상이 흔적없어라.

스승을 그리는 내 열망의 노래
스승이시여, 들으셨나요?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이 제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보호하소서!

불굴의 끈기는
스승께 드리는 최고의 예물.
스승을 기쁘게 하는 최상의 길은
명상의 어려움을 감내하는 것.
이 동굴에서 홀로 머무는 것은
다끼니 여신을 위한 지고(至高)의 봉사요,
거룩한 진리에 헌신함은
불교를 위한 최상의 봉사라.
하여 내 삶을 명상에 바치나니
가련한 뭇 중생은 은혜를 입으리!

질병과 죽음을 사랑함은
죄업을 정화(淨化)하는 축복이요,
금지된 음식을 입에 담지 않음은
깨달음과 해탈의 성취를 돕는 길.
아버지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명상하고 또 명상함이네.
스승이시여. 자비를 베푸시어 저를 보호하소서.
이 걸식 행자를 영원히 이곳에 머물게 하소서.

노래를 부르고 나자 미라래빠는 가슴속이 후련해졌다.
옷을 매만지고 나서 나뭇가지를 한아름 안고 동굴로 돌아왔다. 그러다 동굴에 들어선 그는 깜짝놀랐다.
동굴에는 다섯 악마들이 접시만한 눈을 부라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 명은 침상 위에 앉아 설법을 하고 있었고, 둘은 설법을 듣고 있었다. 또 한명은 음식을 준비하여 바쳤고, 나머지 한 명은 미라래빠의 경전을 놓고 공부하고 있었다.

  미라래빠는 생각했다.
‘이들은 이 지방의 지신(地神)이로구나. 오랫동안 여기서 살아오면서도 아무것도 바치지 않는다고 나를 싫어하는 모양이야.’
그는 ‘붉은 바위 보석 골짜기의 신들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적한 이 은둔처는
모든 부처님들이 기뻐하는 성소(聖所)이네.
성취한 존재들이 사는 곳이며
나홀로 명상하는 곳이네.
붉은 바위 보석 골짜기 위로는
흰구름 두둥실 떠다니고
야생독수리 선회하는데,
발 아래 짱 강물은
끊임없이 속삭이며 흐르네.
꿀벌들은 꽃 사이를 넘나들며
꽃 향내에 취하여 잉잉거리고
새들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조잘대며
명랑한 노래를 퍼뜨리네.
붉은 바위 보석 골짜기에서는
어린 참새떼들 나는 연습하고
원숭이들은 이리 팔짝 저리 팔짝 나무타기 즐기고
뭇 짐승들은 이리저리 달리기 역주하네.
하지만 나 미라는 두 가지 보리심(菩提心)을 수행하며
명상을 사랑하네.
그대 지신(地神)과 유령들, 악마들이여,
미라래빠의 친구들이여,
사랑과 자비의 감로수를 마시고
그대들의 세계로 돌아가길……!

그러나 악마들은 여전히 떠나지 않은 채 미라래빠를 노려보았다.
더러는 험상궂은 인상으로 아랫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이를 갈기도 하고, 흉칙한 모습으로 웃기도 하고 고함을 지르며 덤벼들기도 하며, 미라래빠를 겁에 질리게 하려고 하였다.

미라래빠는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주문(만뜨라)을 외웠다. 하지만 악마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미라래빠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마르빠 스승의 은총으로 모든 존재들과 일체의 현상이 마음의 표현임을 이미 깨달았다. 마음 그 자체(一心)는 투명한 깨달음의 공성(空性)이다. 그러니 이 모든 현상들이 어찌 나를 해치리오? 악마를 물리치고 몰아내려 하다니, 나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가!”

  미라래빠는 ‘깨달음의 노래’를 불렀다.

     

네 악마(질병,방해,죽음,욕망)이기신 아버지 스승
마르빠 역경사시여, 엎드려 절하나이다.
그대들 앞에 있는 나는
설산(雪山) 암사자 다쌩까모의 아들.
모태에서 태어나
세 가지 생명 에너지 통로가 온전해졌네.
어릴 때는 요람에서 잠들고
자라면서 집을 지키고
성장해서는 험준한 산 속에 자리잡았으니,
눈 덮인 산봉우리의 태풍이 위험하여도 무섭지 않고
천길 낭떠러지 절벽이 위태하여도 두렵지 않네.

그대들 앞에 있는 나는
금시조(金翅鳥)의 아들.
알 속에서 날개와 깃털 자라나
어릴때는 요람에서 잠들고
자라면서 둥지를 지키고
성장해서 창공을 날았네.
하늘이 드넓어도 무섭지 않고
길이 가파르고 좁아도 두렵지 않네.

그대들 앞에 있는 나는
물고기의 왕 냐첸요르모의 아들.
어미의 태내에서 황금 눈알 굴렸고
어릴때는 요람에서 잠들고
자라면서 헤엄치기 시작하여
성장해서는 대양을 헤엄쳤으니
산같은 파도가 밀려와도 무섭지 않고
낚시바늘 무수히 늘어져도 두렵지 않네.

그대들 앞에 있는 나는
까귀빠 스승의 아들(까귀란 구전의 뜻. 구전되어 밀라래빠에 이르렀음을 의미)
모태에서 믿음이 자라나
어릴때 진리의 문에 들어섰고
성장해서는 동굴 속에 홀로 살았으니
악마와 유령, 마귀들 덤벼도 두렵지 않네.

설산 사자의 발톱은 얼지 않도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금시조라 하랴.
무쇠덩이는 돌멩이로 깰 수 없나니
깨어지면 어찌 철광석을 제련하랴?
나, 미라래빠는 마귀도 악마도 두렵지 않나니
두려움을 느낀다면
깨달음과 진리 체득, 무슨 소용 있으리.


그대 악마와 귀신들아, 진리의 원수들아!
그대들을 환영하노라!
그대들을 맞이함은 나의 기쁨이기에!
서둘러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기를.
우리 함께 대화하면 지내자.
가더라도 오늘 밤에 가지 말아라.
어둠과 빛의 진리, 맞붙어보자.
그대들은 오기전에 맹세했으리,
미라래빠를 해치고 말겠다고.
이 맹세 져버리고 떠나면
수치와 모독이 그대 뒤를 따르리.

미라래빠는 일어나서 동굴 속에 있는 마귀에게로 곧장 나아갔다.
마귀들은 절망과 공포에 떨며 눈알을 굴리더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소용돌이처럼 함께 어우러졌다가 한 덩어리로 녹아서 사라졌다.

미라래빠는 이런 현상이 마왕 비나야까가 자신을 시험하려고 나타낸 것임을 알았다. 폭풍도 또한 마왕의 짓이 틀림없었다. 다행이도 스승의 자비를 입어 해를 당하지 않게 되었지만, 이후 미라래빠는 한층 깊은 영혼의 정화를 성취하였다.

  마왕 비나야까의 시험에 대한 이야기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 이름도 세 가지로 불린다.
  ‘스승을 그리워하는 여섯 가지 길’. ‘붉은 바위 보석 골짜기이 이야기’, ‘나뭇가지를 주워 모은 미라래빠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0
Leave A Reply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