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랑 천유에게 답하다 ①
[허깨비 임을 알라. 또한 큰 서원을 일으켜라]05
서한을 받아보니 어려서부터 벼슬할때까지 여러 선지식께 찾아 뵈었지만, 중간에 과거 보고 혼인하고 벼슬하느라 다시 잘못된 지각과 나쁜 습관만 늘고 공부가 순일하지 않아서 이 때문에 큰 허물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동시에 세간사 무상하니 가지가지 허망한 허깨비임을 사무치게 알아서 즐거울 것 없기에 오롯한 마음으로 일대사인연을 참구하려 하니 노승의 마음도 매우 흡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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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선비가 되었으니 녹봉을 바라보며 생활을 해나가야 하니, 과거보고 혼인하고 벼슬을 사는 것도 세간에서 피할 수는 없는 것인지라 공의 허물은 아닙니다. 작은 허물 때문에 매우 걱정하시는데, 광겁의 지난생 동안에 참된 선지식을 받들어 섬겨서 반야종지를 훈습함이 깊지 않았다면 어찌 그러할 수 있겠습니까?
공의 말한 대죄는 성현들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허망한 환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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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생각하고, 뒷일을 떠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허망한 환이라 말한다면 지을 도 환이고 받을 때도 환이며 지각할 때도 환이며, 헤매고 넘어질 때에도 환이며, 과거현재미래 모두가 다 환입니다. 오늘 허물을 알았다면 환의 약으로 다시 환병을 다스려야 합니다. 병이 낫고 [환이라는] 약까지 없어지면, 예전과 같아서 옛날의 그 사람일 뿐입니다. 만약 특별한 사람이 있나 법이 있다면, 이것은 삿된 마구니와 외도의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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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랑] 공이 그것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를 벼랑끝에서 나아가듯하되, 때때로 고요함이 지극할 때가 있는데, 허망하게 수미산이나 방하착 등의 두 고칙을 끝내야 함을 부디 잊지 마십시오. 그저 당장 딛고 선 발아래에서부터 착실하게 공부를 지어나가야지, 이미 지난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따지거나 두려워하면 바로 도를 가로막을 것입니다.
다만 부처님 앞에서 큰 서원으로 발원하십시오.
“원컨대 이 마음 굳건하여 길이 퇴전커나 잊지 않고, 부처님 가피력에 의지하여 선지식을 만나 한 마디에 생사를 몰록 없애고, 무상정등정각을 깨달을지니, 부처님의 혜명을 상속받아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여지이다.”
이와 같이 오래 지나다보면 언젠가는 그 도리를 깨닫지 못할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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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본 적 없습니까?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에게서 발심한 이후로 점차 남쪽으로 유행하였는데, 110개의 성을 지나면서 53선지식을 참배하였습니다. 끝에 가서는 미륵보살이 손가락 튕기는 사이, 이전의 선지식이 가르쳐주신 법문을 몰록 잊어버리고 다시 미륵보살의 가르침을 따라 문수보살을 뵙고자 합니다. 이에 문수보살이 오른 손을 멀리 펼쳐 110유순을 지나 선재동자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십니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선남자여. 믿음이 없다면 마음이 졸렬해지고 근심과 후회가 있어 공덕행을 갖출 수 없느니라. 애써 정진하지 않게되고 선근 하나에 마음이 머무르게 되니, 적은 공덕으로 만족하다 여기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교묘한 방편으로 행원을 일으키지 못하고, 선지식의 보호도 받지 못하며, 이와 같은 법성과 이와 같은 본래 지취와 이와 같은 법문과 이와 같은 행법과 이와같은 경계를 알지 못하느니라. 두루하는 지혜라든가 온갖 종류 지혜라든가 바닥밑까지 다다른다던가 파해쳐 모조리 안다든가 들어간다든가 해탈한다든가 분별한다든가 증득해 안다든가 하는 것들 모두를 다 해낼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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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이 이같이 알려주시자 선재 동자는 즉시 아승지의 한량없는 법문을 성취하여 무량한 대지혜광명을 구족하게 됩니다. 보현문에 들어가 일념 중에 삼천대천세계 미진수의 모든 선지식을 다 친견하고, 가까이 공경히 받들어 섬기고, 가르침을 받아 수행하여 망념 없는 지혜의 장엄장 해탈을 얻습니다. 보현보살의 모공의 국토에 이르러 모공 하나에서 한 걸음 내딛어서 말로다 할 수 없는 많은 부처님 세계를 지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보현보살과 같아지고 모든 부처님, 부처님 국토, 부처님 수행, 부처님의 해탈자재하심과 모두 같아지니, 조금도 다르지 않고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바로 그때 비로소 삼독 삼독 : 탐욕과 이기심, 성냄과 혐오, 어리석음과 편견은 몸과 마음을 해치는 독과 같다하여 삼독이라 하였다.
을 삼취정계 삼취정계 : 대승을 배우는 보살이 지키야할 세가지 정계이다. 섭률의계, 섭선법계, 섭중생계이다.
로 돌리며, 육식을 육신통으로 돌리며, 번뇌를 보리로 돌리며, 무명(어리석음)을 지혜로 돌리게 됩니다. 위와 같은 그런일들은 단지 자신의 마지막 일념이 진실한 데에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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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동자가 미륵보살이 손가락 한번 튕기는 사이에 여러 선지식을 통해 증득한 삼매까지 단박 잊을 수 있었는데, 하물며 무시이래로 허망하고 거짓된 악업의 습기이겠습니까? 만약 이전에 지었던 죄업이 진실하다면, 지금 바로 눈앞 경계도 모두 실재로 존재하며, 나아가 관직이나 부귀나 은애도 모두가 다 실재할 것입니다. 이것들이 실재한다고 치면, 지옥과 천당도 역시 실재하고, 번뇌와 무명도 실재하며, 업을 짓는자도, 과보를 받는자도 실재하게 됩니다. 증득되는 법까지 실재하게 되니, 만약 여러 가지 견해들을 만들어내면, 미래세상이 다하도록 다시는 아무도 부처님 가르침[佛乘]에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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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받고보니, 공이 서신을 보낼 때에 제불보살님께 향을 사르고 이곳 암자를 향해 멀리서나마 예를 올리고난 후에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공의 정성스러운 마음과 지극한 간절함이 그러하고 서로 떨어져 있음이 매우 멀지는 않음에도 여지껏 마주하고 대화는 못하고 있습니다. 손 가는대로 마음가는 대로 끄적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렇게 어지러워졌습니다. 번다하기는 할지라도 지극히 정성스러운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 말씀 한글자 함부로 속이 않않았으니, 공을 속였다고 한다면, 이것은 자신을 속인 것이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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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억해보면, 선재동자가 최적정바라문을 만나 성어해탈[誠語解脫]을 얻었습니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불보살님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조금더 물러난 적이 없었으며, 지금도 물러나지 않고, 당래에도 물러나지 않아서, 구하는 것이 생기면 이루지 못한 것이 없다”함은 모두가 정성이 지극함에 미치게 된 까닭입니다.
공이 이미 대나무 의자와 좌복을 도반으로 삼았다 하였으니, 선재동자가 최적정바라문을 친견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또한 저의 편지를 보면서 제불성현 대하듯 멀리서 예를 올린 후에 보낸다 하였습니다. 오직 나, 운문을 믿어서 허락을 바란다하니, 이것이 정성이 지극함이 대단합니다. 오직 한마디만 기억하십시오.
이와같이 공부를 지어나가기만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틀림없이 성취될 것입니다.
16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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