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 타고 승천한 동자(童子) – 칠불암 아자방
- 아자방 : 亞자 모양, 그러니까 십자 모양으로 만들어진 방을 말한다. 칠불암 선방이 아자 모양으로 되어있다.
조선시대 중엽이었다.
하동 군수로 새로이 부임한 사또가 어느 날 쌍계사에 들른 길에 전부터 소문을 많이 들은 그 부근의 칠불암 아자방(亞字房)을 찾아갔다.
사또 일행이 칠불암에 다다른 때는 아자방 선원에서 스님들이 오후 참선에 들어간 때였다.
마침 뒤뜰에서 노스님 한 분이 나오길래 이방이 나서서 말을 건넸다.
「새로 부임한 사또께서 이곳 구경을 왔소이다.」
노스님은 반가이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하지만 산중에서 공부한는 곳이라 특별히 볼 만한 것이 있어야지요.」
「그런 염려는 할 것 없습니다. 그저 아자방이나 한번 구경하고 갔으면 하오.」
노스님은 무척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공부 중이라 선방 안을 보여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또 일행은 이 말에 물러서지 않았다.
사또는 말리는 노스님을 물리치고 아자방 선원으로 성큼 올라가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뜻밖의 광경에 눈에 뜨이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은 바로 뒤라 그런지 스님들은 식곤증에 취하여 갖가지 모습으로 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서 조는 스님, 땅을 내려다보며 조는 스님, 좌우로 흔들거리며 조는 스님, 게다가 방귀까지 마구 뀌는 스님도 있었다.
이를 본 사또는 어처구니가 없어 이맛살을 찌푸리며 문을 닫고 내려섰다.
「이곳은 고승(高僧) 대덕(大德)들이 공부하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소. 무슨 공부가 이 모양이 모양이오?」
사또는 노스님께 꾸짖기라도 하듯이 따져 물었다.
「방 안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조는 것은 대체 무슨 공부요?」
노스님이 대답하였다.
「네, 그것은 앙천성숙관(仰天星宿觀)이라고 합니다. 하늘의 별자리를 보아 일체 중생을 다 구제하려고 하는 공부입니다.」
「그러면, 머리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 보는 것은?」
「지하망령관(地下亡靈觀)이지요, 한 세상 업을 짓고 죽은 지하의 망령들을 어떤 방법으로 제도할 지를 한 마음으로 관(觀)하는 공부입니다.」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한 채로 좌우로 봄버들 마냥 흔들거리는 것은?」
「그것은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이라 하여, 有와 無, 善과 惡, 苦와 樂의 어느 한쪽에도 집착하지 않는 관을 함으로써 오묘한 경지에 이르는 공부이지요.」
사또는 노스님의 거침없는 답변에 저으기 놀랐다.
「그렇다면 앉아서 방귀나 풍풍 뀌는 것은 또 무슨 공부요?」
「네, 그것은 칠통타파관(漆桶打破觀)이라고 합니다. 무지한 사람들이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고 제 고집만 내세우려는 칠흑 같은 마음을 깨뜨려 주기 위한 공부랍니다.」
사또는 그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그 말대로라면 과연 소문처럼 휼륭하고 기특한 데가 있겠소. 내가 숙제를 하나 내리다. 내일 안으로 동헌 뜰에다 목마를 만들어 놓을 터이니 한번 타고 달려보시오. 만일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선방은 문을 닫고 대중들은 크게 경을 치게 될 것이오.」
사또 일행이 떠나자 대중스님은 크게 걱정하며 큰방에 모여 밤늦도록 의논하였으나 뚜렷한 묘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에 맨 아랫자리에서 잠자코 앉아 있던 한 동자가 나서며 말했다.
「대중스님들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동헌에 가서 이 일을 처리해 보겠습니다.」
「아니, 동자가 무슨 수가 있단 말인가?」
더러는 동자를 꾸짖기도 하였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음날 동자는 과연 동헌에 가서 목마를 타고 앉았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말의 엉덩이를 힘껏 쳤다.
그러자 목마는 갑자기 히히힝 소리를 내며 뜰을 세 바퀴 돌더니 방울 소리를 울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목마는 곧 푸른 사자의 모습으로 바뀌고 그 등에 탄 동자는 문수보살로 변하여 하늘 멀리 사라져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문수동자가 사라진 쪽을 향하여 합장하였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사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지극한 신심을 갖고 칠불암 아자방 선원을 보살폈다고 한다.